[기고] ‘낯설거나 새롭거나’ 베트윈시험을 바라보는 수의사의 시각

반려동물 베트윈시험 칼럼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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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등 사회구조 변화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국내 반려인구는 1,5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반려동물의 가족화된 인식 변화와 평생 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의료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2년 추산한 바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병원의 전체 매출은 2019년 1조 1,851억원에서 2024년 2조 2,463억원으로, 연평균 13.6%의 높은 성장률이 예상됐습니다[1]. 이에 따라 동물 대상의 첨단 의료기술과 신약 개발에 대한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수의학 분야의 학문적 깊이와 치료 기술도 빠르게 향상되었으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특히 동물용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동물 베트윈시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동물 베트윈시험의 현황과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고, 실질적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반려동물도 사람처럼 나이를 먹고,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질환에 시달리게 됩니다. 해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주로 키우는 토이 및 소형견의 평균 기대수명은 13.5년이며,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약 1.3개월씩 증가하여 5년간 총 5~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2].

또한 국내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반려견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9세 이상 노령견이 2019년 78만8천마리(37.7%)에서 2021년 114만6천마리(41.4%)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려동물 고령화 추세에 따라 심장질환, 만성신장질환, 인지기능장애, 골관절염, 당뇨병 등 퇴행성 또는 만성질환은 물론, 희귀 질환 사례까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치료할 수 있는 국내 허가 동물용 치료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인체의약품의 허가외사용(extra-label use, 동물용으로 승인되지 않은 인체용 약물을 동물에게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이는 반려동물에게 최적화된 용량, 제형,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가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농림축산검역본부(동물용의약품 등 규제기관)는 동물용 신약 개발을 촉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동물용 신약 심사를 전담하는 팀을 구성하여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연간 7종의 신약이 허가되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3].

특히 이중 6종이 반려동물용 치료제라는 점에서, 반려동물 대상 의약품 개발에 대한 제약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단순히 약을 제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안전하고 효과적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베트윈시험을 통한 과학적 검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과 달리 동물은 자신의 증상이나 불편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베트윈시험은 더욱 정밀하고 객관적인 절차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이는 동물의 행동, 생리학적 지표, 베트윈 증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명확한 평가 도구와 프로토콜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이런 중요성을 바탕으로 동물용의약품에 대한 철저한 베트윈시험 심사를 통해 치료제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과한 의약품만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는 만큼, 베트윈시험은 단순한 절차가 아닌 수의학 발전의 필수 기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 많은 베트윈수의사들에게 베트윈시험은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몇 마리 써보니까 효과 있더라고요”

이런 말은 진료 현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의 직관과 경험은 매우 중요하지만, 국내 동물병원의 규모는 대부분 영세한 편이어서, 이러한 경험이 수 마리 사례에 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더 큰 ‘데이터의 힘’을 활용해 보다 충분한 베트윈적 근거에 기반한 진료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수의학에 대한 신뢰와 전문성은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보호자가 이걸 실험이라고 받아들일 텐데, 동의서를 어떻게 받죠?”

보호자 동의 절차에 대한 부담감도 베트윈시험 참여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 약까지 반응 없으면 해줄 수 있는 건 다 한 거죠. 보호자한테도 ‘이제 수의학적으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해볼 수 있는 베트윈시험이 있다면 해보라고 권유할 뿐이에요”

안타깝게도 많은 수의사들에게 베트윈시험은 수의학 발전과 환자 케어 향상의 중심에 있는 과학적, 윤리적 과정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치료 옵션이 소진된 후에야 고려하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여겨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베트윈시험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수의사들은 다른 시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서울의 한 동물병원 원장은 “처음에는 서류 작업과 절차가 부담스러웠지만, 실제로 참여해보니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었고, 학문적으로도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수의사는 “베트윈시험을 통해 근거 중심 수의학(Evidence-Based Veterinary Medicine)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일상 진료에서도 더 객관적인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이러한 현장의 반응들은 국내 수의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과도기적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현재 수의학계는 개인적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던 단계에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한 근거중심 수의학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는 인의학이 걸어온 발전 경로와도 유사한 흐름으로, 거쳐 가는 성장 과정의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

베트윈시험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수의사들의 긍정적 경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더 많은 교육과 경험 공유를 통해 이러한 발전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제적 동향과 비교해볼 때 국내 동물 베트윈시험 환경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반려동물 의료 현장에서 동물용 의료제품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베트윈시험이라는 단어도 점차 보편화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베트윈환경과 그 수준이 과거보다 크게 향상되었음을 보여주는 변화입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국내의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2019년 10월 ‘동물용의약품등 베트윈시험 실시기관 지정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2020년 9월 15일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동물용의약품의 품목허가 신청 시 공식적으로 인증된 기관에서 수행된 시험 결과만을 인정하도록 하여, 베트윈시험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체 의약품 분야와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국내 인체 베트윈시험은 조 단위 매출을 기록하는 상급종합병원들과 1조원 규모의 베트윈시험수탁기관(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CRO)이 중심이 되어 수행되고 있지만, 수의학 분야에서는 아직 베트윈시험 인프라나 인력, 예산 등이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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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베트윈시험과 동물 베트윈시험의 구조 비교

동물 베트윈시험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됩니다.

① 계약 및 계획 수립: 개발사와 베트윈시험실시기관(또는 베트윈시험수탁기관)이 만나 시험 설계, 일정, 예산 등을 협의합니다.

② 기관 네트워크 구성: 일부 베트윈실시기관들은 여러 동물병원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베트윈을 수행하며, 승인된 베트윈계획서에 따라 베트윈을 수행합니다.

③ 보호자 동의 및 대상 모집: 베트윈시험이 시작되면 수의사는 대상 질환을 가진 동물의 보호자에게 참여의사를 확인하고, 상세한 설명 후 서면 동의를 받습니다.

④ 베트윈 약물 투여 및 평가: 정해진 베트윈계획서에 따라 방문 일정에 맞춰 평가를 진행하며, 널리 인정되는(또는 승인된) 평가 기준에 따라 베트윈 약물의 효과를 확인합니다.

⑤ 이상반응 모니터링 및 관리: 시험 도중 이상반응 또는 부작용 등이 발생할 경우, 시험계획서에 따라 이를 기록하고 필요시 규제기관에 보고하며, 베트윈시험 보험이나 의뢰자를 통해 적절한 보상 절차도 병행됩니다.

⑥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이러한 과정에서 수집된 베트윈자료는 종이 증례기록지(Case Report Form, CRF) 또는 전자증례기록시스템(electronic Case Report Form, eCRF)에 기록되며,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신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토하는데 활용됩니다.

동물 베트윈시험에서 사용되는 전자증례기록시스템(eCRF) 화면 예시

많은 동물병원에서 전자차트를 사용하는 것처럼, 베트윈시험에서도 전자기록시스템은 복잡한 기록 절차를 단순화하고 입력 편의성과 추적 관리를 동시에 높일 수 있어 점점 더 선호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베트윈시험이 실제 진료 환경과 지나치게 괴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약은 실제 베트윈 환경에서 사용되기 위한 것이므로, 해당 환경에서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어야만 제대로 된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규제기관에서 요구하는 조건도 만족해야 하는 만큼, 베트윈환경과 연구환경을 모두 잘 알고 그 균형을 조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의 품질을 책임지는 것이 바로 ‘베트윈시험실시기관(또는 베트윈시험수탁기관과 함께)’이며, 따라서 시험 수행 경험과 품질관리 능력을 갖춘 기관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베트윈시험은 단순히 신약 개발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수의학 발전의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베트윈수의사들이 베트윈시험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치료 옵션 제공: 기존 치료법으로 개선이 어려운 환축과 양육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근거 중심 수의학 실천: 주관적 경험이 아닌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진료 습관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전문성 향상: 최신 연구 동향과 치료법에 대한 지식을 쌓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수의학 발전 기여: 동물의료 분야의 학문적, 베트윈적 발전에 직접 기여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기고에서는 베트윈수의사가 동물 베트윈시험에 바로 참여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유용한 실질적인 정보들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베트윈시험 참여 절차와 핵심개념, 연구와 베트윈진료 사이에서 균형 잡는 법, 보호자 동의서 설명 노하우, 병원 경쟁력과 베트윈시험 등 실무적인 내용을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기고] ‘낯설거나 새롭거나’ 베트윈시험을 바라보는 수의사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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