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Practice to Passion:호주에서 경험한 수의 임상 실습
2025 실습후기 공모전 [최우수상] 경북대 김민서
2025 실습후기 공모전 [최우수상] 경북대 김민서


호주로 실습을 지원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처우가 나은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여행을 좋아해서 매년 연속으로 한 달정도는 여행을 가고 싶지만, 꼭 데일리벳사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직장인이 자리를 오래 비우기란 쉽지 않다.
데일리벳사 선배님께 “저는 주 7일 근무를 하더라도 한 달 연속으로 휴가를 쓰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리니 “수의대 자퇴하고 냉면집을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외에도 데일리벳사 선배님들을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면 항상 학생 때 더 멀리, 더 길게 여행을 다녀오라고 조언하신다. 나중에는 시간도 돈이라고, 시간이 공짜일 때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셨다.
대형 동물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시는 선배님들은 2박 3일 일본 여행이 최대치라고 하셨고, 1인 동물병원 원장님인 선배님은 개원 5년 중 딱 한 번 이틀동안 휴원하고 여행을 다녀오신 게 다라고 하셨다.
그에 반해 미국, 독일, 호주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에 한 달정도 휴가를 쓸 수 있었고, 독일의 경우에는 연속 45일까지 휴가를 쓸 수 있다고 했으며, 호주의 경우에는 유급휴가가 4주정도 되고 무급휴가와 병가 등은 따로 있다고 했다.
또한 데일리벳사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국가별로 달랐다. 한국에서는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중성화 수술을 주로 한다며 비하하는 멸칭이 있을 정도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 전공이 뭐냐는 질문에 데일리벳대 다닌다고 말하면, 독일에서는 대부분 ‘정말 좋은 일 하는 구나’, 미국에서는 거의 모두가 ‘돈 많이 벌겠네’, 호주에서는 ‘어딜 가든 일자리가 있어서 부럽다’고 얘기를 해 주었다. 이러한 시선은 진료를 할 때에도 참 많이 반영되는 것 같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후술할 예정이다.
두 번째로, 소동물부터 대동물까지 모두 치료할 수 있는 mixed practice를 하고 싶어서다.
할아버지께서 농사를 지으셔서 어릴 때부터 소나 돼지, 염소 등 농장동물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할아버지께 수의대에 진학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여자가 그런 일 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많이 말리셨다. 실제로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지역에는 여성 데일리벳사가 없다.
산과학 교수님께 상담을 갔을 때도, 말이나 소까지는 여성 데일리벳사가 진출해 있지만 돼지나 닭 등의 농장동물 분야에는 여성 데일리벳사가 잘 없고, 진입하기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다.
소동물만 치료하는 데일리벳사가 되는 것도 괜찮지만, 나중에 작은 농장을 운영하고 싶었기에 농장동물도 포기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제작한 캐나다 유콘에서 활동하는 여성 데일리벳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데일리벳사 오클리’, 호주에서 헬리콥터로 이동하며 외곽 지역의 동물들을 치료하는 ‘the flying vet’을 보고 해외의 데일리벳사로 일하는 것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전문의(specialist) 제도이다. 예과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수의대만 졸업하면 다 멋진 데일리벳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본과에 올라와서 공부를 하다보니 생각보다 내가 많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혹시 내가 잘못 치료해서 내원한 환축이 죽으면 어떡하지?’, ‘다른 데일리벳사에게 갔으면 더 살 수 있는 친구들인데 내가 잘 모르는 질병이라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쳐서 잘못 되면 어떡하지?’, ‘나는 한 번 배웠다고 다 기억할 수 없는데,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괜찮은 데일리벳사가 될 수 있을까?’ 등등 내 능력에 대해 계속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과 때 1인 원장 동물병원에서 테크니션으로 2년동안 일했는데, 그 때는 아직 안 배웠으니까, 내가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원장님께 여쭤보는 게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뒤면 내가 면허증을 받을 텐데, 그 때도 그럴 수는 없으니까 무작정 두려웠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고민해보다, 다른 나라에는 전문의(specialist) 제도가 있다는 것을 듣고 전문의 제도가 있는 나라에 실습을 가 보기로 결심했다.
실습 자체가 공식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준비 과정은 따로 없었다. 호주 동물병원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데일리벳사분께 메일로 실습 문의를 넣었고, 일정을 조율하고 실습을 시작했다. 이 동물병원은 서울대와 협약을 맺어 매년 서울대 학생들이 실습하러 방문한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실습을 가기 수월했을 수도 있다.
Email: reception@rossmorevethospital.com.au
Fax: (02) 9606 5841
Address: 651 Bringelly Road, Rossmore, NSW 2171

한국의 데일리벳대와 달리 호주의 데일리벳대는 본과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가는 방학에 데일리벳테크니션 업무를 배우는 실습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본과 1학년만 마친 나는 주로 테크니션 업무를 도맡았다. 2년 동안 동물병원에서 데일리벳테크니션으로 일한 경험이 있어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때의 경험과는 사뭇 달라서 인상적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일했던 곳은 데일리벳사 1인, 테크니션 3인으로 구성된 작은 동물병원이고 이번 실습처는 데일리벳사만 10명이 넘고 테크니션은 20- 30명 정도로 구성된 큰 동물병원이라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간단한 보정, 리셉션 업무, 검사 등을 담당했지만, 호주에서는 테크니션 업무가 더 다양하기 때문에 나의 업무 또한 더 다양해졌다. 간단하게는 근육주사, 정맥주사, 피하주사, 수술 보조부터 채혈, 스케일링, 검사, 간단한 문진까지 해볼 수 있었다.
함께 일했던 데일리벳사분들께서 내가 옆에 있으면 간단한 진료까지 볼 수 있게 해주셨다. 문진 이후 내게 어떤 질병이 의심되는지, 어떤 치료법이 적합할 지 계속 물어봐 주셔서 실습기간 동안 더욱 얻어가는 게 많았다.
호주와 한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느낀 것 그대로 서술해볼까 한다. 먼저 호주와 한국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아직 동물병원 진료비 수가가 완전히 책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동물병원의 대표 원장님께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러 가셨을 때, 코미디언이 ‘넌 아주 부자겠네, 네가 부르는 게 값이잖아’는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병원별로 기본적인 수가는 정해져있지만, 처치의 난이도 등에 따라 진료비가 다르다고 한다. 사실 호주는 한국보다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도 높고, 동물병원이 체계화된 지도 오래되어 진료 수가가 고정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과 비슷해서 많이 놀랐다. 함께 일한 데일리벳사분들께 여쭤 보았는데, 이와 관련한 보호자의 반발 또한 없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한국과 호주의 차이점이다. 먼저 근무의 유연함을 들 수 있다. 스케줄이 고정적인 한국과는 다르게, 호주는 아주 유연하게 스케줄을 짤 수 있다. 일을 더 하고 싶으면 더 해도 되고, 오전 근무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물론 근무하는 모든 데일리벳사의 근무 시간이 균형을 이뤄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원동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 7일 근무를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계약된 근로 시간보다 근무 시간이 더 많으면 그 시간을 유급 휴가로 쓸 수 있다. 한국에서 원하는 ‘유연 근무제’가 데일리벳업계에서도 잘 정착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스케줄을 담당하는 원장님께, “만약 모든 사람이 휴가를 쓰고 데일리벳사 2명만 남게 되면 어떡하죠?”라고 여쭤보았을 때, 많은 환축을 진료하지 못하더라도 2명이서만 치료한다고 하셨다. 병원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줄 수 있는 그 여유가 굉장히 부러웠다.
또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 병원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점심시간이 30분일 수도, 1시간일수도 있다.
실습했던 병원은 walk-in이 주가 되는 병원이었지만, 대부분의 동물병원이 예약제로 운영되어 항상 여유롭다고 한다.
두 번째로, 데일리벳사에 대한 존중이다. 테크니션으로 근무했을 때 임상데일리벳사라는 진로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일부 보호자들의 태도였다. 진료비를 깎아 달라고 하시는 보호자, 병원에 내원하지 않으시고 전화로 증상을 설명하시며 진료비를 내지 않으려고 하시는 보호자, 입질을 하는 강아지에게 입마개를 씌우는 것을 거부하는 보호자, 질병에 대해 설명을 해드려도 ‘자신의 반려동물은 자신이 더 잘 안다며 당신이 뭘 아느냐’는 식인 보호자 등 데일리벳사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호주에서 실습했던 병원에서는 이러한 보호자가 잘 보이지 않거니와, 만약 이러한 태도를 보인다면 다른 병원 가시라고 하고 진료를 끝낸다. 여기서 데일리벳사라면, 데일리벳사답게 수의학적 지식과 치료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해도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불편하고 힘든 다툼, 언쟁을 덜 해도 된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실 기본적으로 데일리벳사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보호자들이 잘 없다. 사례를 하나 들자면, 림프종 진단 후 chemotherapy를 할 것인지, 스테로이드로만 치료할 것인지를 보호자에게 물어보았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보다 데일리벳사인 네가 더 잘 알테니 더 나은 치료 방법으로 치료해주길 바란다”고 대답한 것을 들고 싶다.
내가 불운한 탓인지 항상 ‘내 애는 내가 더 잘 알아’라는 마음을 가진 보호자님들을 봐오다가 데일리벳사를 믿고, 자신의 반려동물을 맡기는 보호자를 보니 참 이 길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진료를 볼 때 옆에 서있는 나에게 수의대생이냐고 물어보고 공부가 하기 힘들더라도 꾹 참고 공부해달라고, 우리는 좋은 데일리벳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신 보호자님도 있었다. 대부분의 보호자님들이 진료 후 문을 열고 나가시면서 인사치레일지라도 고맙다고 하며 나가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세 번째로, 수평적인 직장 분위기이다. 병원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실습생인 나에게도 항상 친절하시고, 나의 의견은 어떤지 여쭤보셨다. 특히, 멀빈이라는 데일리벳사분은 우리 어머니가 태어난 년도에 데일리벳사가 되셨다고 하며 당신의 손녀가 나와 비슷한 나이라고 하셨는데도 항상 나를 존중해주셨다. 내가 틀리거나, 느리거나, 답답하더라도 항상 기다려주시고, 천천히 다시 설명해주셨다. 나보다 어린 테크니션들에게도 절대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으셨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동물병원에서는 원장님보다 나이가 많은 데일리벳사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병원의 원장님들은 우리 부모님 나이대거나 그보다 젊으셨던 반면 우리 조부모님 나이대의 데일리벳사 분들이 제법 있었다. 어리다고 해서 무시하지 않으며,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해고되지 않는다.
그래서 젊은 데일리벳사들은 선배 데일리벳사들에게 자유롭게 자문을 구할 수 있으며, 나이가 많은 데일리벳사들은 새로운 치료법을 후배 데일리벳사에게 배울 수 있다. 모두가 모두를 존중하며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테크니션-데일리벳사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데일리벳사가 테크니션에게 지시하는 게 아니라 함께 협업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호주의 테크니션들 중에는 자격증이 있는 분들이 제법 있으셔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시는 게 정말 멋있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동물복지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호주의 동물복지가 한국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사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단미를 하지 않은 웰시코기를 호주에서 볼 수 있었다.
호주는 단이, 단미 등 미용을 목적으로 한 성형수술이 절대 금지되며, 그러한 수술을 받은 동물을 해외에서 데려오는 것 또한 금지한다고 한다.
또한 안락사가 흔하다. 동물복지의 관점에서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동물의 삶의 질이 많이 저하되었다면 슬프더라도 보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관점에서 호주는 사람의 안락사 또한 합법이다.

다음으로는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들었던 케이스를 소개하려 한다.
첫 번째로 레이싱 독인 그레이하운드이다. 호주에서는 dog racing이 경마만큼 인기 있는 종목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와 같은 작은 종만 보다가 송아지만 한 그레이하운드를 보니 개라기 보다는 요정을 보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그레이하운드는 PCV가 높기 때문에 혈전이 생기기 쉽고, 골절과 근육질환이 흔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며 마사지를 받는 것도 신기했다.
치료의 방향성이 ‘재활’에 맞춰져있어, 저강도 레이저 치료 요법이 흔히 사용되었다. 레이저 치료는 비침습적이고, 치료시 통증이 없으며, 빠른 회복을 돕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받을 경우 근육파열에 아주 효과적이고 회복 기간이 많이 단축된다고 한다.
또한 그레이하운드의 피부는 다른 강아지들과 다르게 매우 얇기 때문에 중성화 수술과 같은 간단한 수술이라도 조금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레이하운드는 반려동물이라기 보다는 레이싱 독인 경우가 많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다리를 조금이라도 못 쓰게 되면 안락사를 시키는 주인이 더러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죽었을 경우 부당하게 안락사를 당한 것은 아닌지 조사하고 데일리벳사의 서명을 받는 등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두 번째로 이전에도 언급했던 안락사다. 사실 한국에서도 흔하지는 않지만 드문 케이스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호주에서는 훨씬 자주 안락사를 하는 것 같다. 실습기간 동안 매일 적게는 2건, 많게는 6건 정도 안락사가 이루어졌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동물의 삶의 질이 저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호자들이 받아들이는 것이 한국과는 다소 달랐다. 한국에서는 최대한 치료할 수 있는 끝까지 동물들을 치료하려는 반면 호주에서는 치료한다 해도 완치할 수 없는 심장병이나 척추질환일 경우 생각보다 쉽게 안락사를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가 반려동물을 감당할 수 없으면 금방 포기하는 것이 나을까? 좀 더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직접 안락사 약물을 주입한 케이스이다. 호주에서는 데일리벳사의 지도 아래 수의대학생이 처치나 치료를 하는 것이 합법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이 친구는 그레이하운드로, 하반신 마비가 와서 삶의 질이 아주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레이하운드는 PCV가 높고 DEA 1.1 음성이 많아 수혈 공여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친구도 안락사 전 잠깐 동안 헌혈을 했다. 유난히 노쪽피부정맥(cephalic vein)이 굵게 잘 보였다.
다음 생에는 더 많이 더 자유롭게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락사 약물을 주입했고, 그 친구는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심장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화장 준비를 했다.
세 번째는 특수동물이다. 다양한 동물이 살고 있는 호주답게 뱀, 사슴, 토끼 등 한국의 일반적인 동물병원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동물들이 내원했다. 내가 실습했던 기간에는 없었지만, 가끔 캥거루도 내원한다고 한다. 캥거루는 주로 교통사고를 당해 오는 편이라 안락사를 해주는 것 말고 다른 치료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사슴이 외상을 당해서 내원했길래, 당연히 교통사고인 줄 알고 외상의 원인을 여쭤보았다. 그런데 보호자의 집에서 키우는 반려사슴이기 때문에 교통사고일리가 없다고 하셨다. 반려사슴이라니, 그래서인지 몰라도 털이 아주 부드럽고 사슴이 참 예뻤다.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밤비처럼. 편의상 밤비라고 부르겠다.
밤비는 펜스에 부딪혀 외상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체온이 아주 높았고, 이따금 발작을 일으켰다. 하루동안 입원치료를 하며 수액 처치를 받았다. 입원 케이지 안에서 발작을 일으키며 자신의 다리로 스스로 눈을 다치게 하는 등 경과가 좋지 않았다.
해열제 투약 후 40도가 넘던 열이 30도 대로 떨어져서 차도가 좋을 줄 알았고, 퇴근 전 인사도 하고 갔는데 그 다음날 출근하니 죽어 있었다.
토끼의 엉덩이 농양 수술도 새로웠다. 토끼의 엉덩이에 사람 엄지손가락 두 개 만한 농양이 생겨 제거하고 봉합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었다. 하지만 모니터링 기계가 토끼 전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신경 써서 모니터링 하고, 마취 또한 신중히 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많이 배우지 못해 잘 모르지만, 다양한 동물에 대해 치료법과 그 사이 작은 차이점들을 모두 기억하시는 데일리벳사분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다양한 동물 치료를 커버할 수 있는 유능한 데일리벳사가 되고 싶다.

네 번째로 스페셜리스트의 진료이다. 한국에는 일단 스페셜리스트(이후 전문의)가 없고, 석박사 출신 데일리벳사분들께서도 출장진료는 잘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호주에는 전문의 제도가 잘 자리 잡혀 있어 우리가 2차 동물병원이나 대학동물병원에 진료를 의뢰하는 것처럼 전문의에게 진료를 의뢰한다.
이 때 전문의가 1차 동물병원으로 와서 진료를 하게 되면 보호자는 전문의 출장비와 치료비를 전문의에게 지급하고, 수술에 필요한 테크니션 비용이나 마취비 등 부가 서비스에 대한 비용은 1차 동물병원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낮춘다.
실습 기간동안 두 명의 전문의를 만날 수 있었다. 첫 번째 전문의는 영상 전문의였다. 이 분은 내과 전문의도 가지고 있으셔서 정말 해박하셨다. 1억원 정도 한다는 초음파 기계를 사용하시며 빠른 속도로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다. 초음파 사진을 찍으시면서 옆에 있는 나와 다른 실습생에게 엄청난 빠르기로 환견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당시 검사했던 환견은 신장 수치가 너무 높아서 초음파를 보게 됐는데, 암은 아니지만 상태가 매우 안 좋은 퇴행성 질환이라 치료하기 힘든 상태라고 하셨다. 신장 투석이 가능하기는 하나, 진료비가 엄청난 고가라 보호자들이 많이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아직 영상의학에 대해 배운 것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정상일 경우에는 초음파상에서 신장이 어떻게 보이는지, 이 환견의 경우에는 정상 신장과 어떻게 다른 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그나마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른 전문의는 정형외과 전문의였다. 이 케이스는 앞십자인대(Cranial Cruciate Ligament) 파열이었다. 이 분이 오시기 전에 다른 수술 방법 2개를 참관했어서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 좋았다. 이 분의 수술법은 TPLO(Tibial Plateau Leveling Osteotomy)였다. 호주의 경우 대형견이 많아 다른 수술법으로는 치료가 힘들기 때문에 TPLO를 가장 선호한다고 하지만,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대부분 전문의에게 의뢰한다고 한다.
재파열 위험이 낮고, 십자인대 없이도 안정적인 관절 유지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비용이 비싸고(이 케이스의 경우 8000호주달러, 원화 800만원 정도) 회복 기간이 2~3개월 정도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나사를 이용한 정형 수술은 의사의 수술 보다는 목데일리벳 작업과도 같아 흥미로웠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LFS(Lateral Fabellotibial Suture) 변형 수술법이었다. 일반적으로 LFS는 관절 외측의 Fabella와 Tibia 앞쪽을 연결하는 강한 나일론 봉합사를 삽입하는 수술법이다. 이 수술은 그와는 다르게 cranial part of cranial tibial muscle을 절개하고 이 tendon 뒤로 와이어를 두 개 집어넣는 방법이다. 종아리 쪽 와이어가 주 역할을 하고 그 위의 와이어는 보조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역할을 하는 와이어를 먼저 꼬아야 한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양쪽 다리 수술을 한 번에 하셨다는 점이다. TPLO의 경우 한 번에 할 수 없고 재활 기간이 길지만, 이 수술법은 며칠 입원 후에 강아지가 자기 발로 걸어나갈 수 있다고 하셨다. 나일론 봉합사 대신 와이어를 쓰기 때문에 대형견에게도 적합한 수술법이고, 재발 확률이 적다고 하셨다. 이 케이스의 경우에도 40키로가 넘어가는 저먼 셰퍼드였다.
LFS의 변형 수술법이기 때문에 혹시 표절이라고 지적 받을 수 있어 논문을 따로 작성하시지는 않았다고 하셨지만, 자신만의 수술법에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다만, 다른 데일리벳사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형견의 경우 와이어가 끊어져 재발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TPLO가 더 안전하다고 하시기도 하셨다.

다섯 번째는 번식과 관련된 진료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반려동물이 중성화 수술을 받지만, 호주에서는 브리더가 많고, 이 산업 또한 제법 규모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인공수정이나 제왕절개 등 번식과 관련된 진료가 많았다.
자연적으로 교배가 힘든 종인 불독, 보스턴테리어, 퍼그와 같은 견종들이 인공수정이 필요한 대표적인 견종이다. 이 케이스는 닥스훈트로, 긴 몸과 짧은 다리로 자연교배시 자세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인공수정이 필요했다.
인공수정의 과정은 정액채취, 정액 처리, 암컷에게 주입 순으로 이루어진다. 정액은 3개의 단계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 분획은 전립선액이기 때문에 정자가 들어있지 않아 필요하지 않고 두 번째 분획을 위주로 사용한다.
정액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량을 따로 담아 현미경으로 정자의 활동성을 확인해보았는데, 아주 빠르고 힘차게 움직였다. 암컷에게 주입한 후 정자가 잘 이동할 수 있도록 물구나무를 서도록 뒷다리를 잡고 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다음으로는 제왕절개이다. 앞서 언급했던 견종들은 분만시에도 자연분만 보다는 제왕절개가 더욱 안전하다. 자견의 머리가 크고 모견의 골반이 좁기 때문에 분만 시 질 내에서 질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케이스의 경우 보스턴테리어였다. 보았던 자궁 중 자궁축농증이 아주 심한 말티즈의 자궁이 제일 컸었는데, 새끼가 들어있는 자궁은 그것보다 2배는 더 컸다.
자궁 몸통을 절개하고 태아를 한 마리씩 신속하게 꺼내는데, 이 때 태아가 많으면 자궁 뿔을 절개하여 태아를 꺼내야한다. 이 케이스는 무려 9마리의 태아가 있었는데, 자궁 몸통 절개로도 충분했다. 태아를 꺼내자마자 호흡자극을 하고, 호흡을 시작하며 우렁차게 울어야 스크러빙을 멈출 수 있다. 이 때 잘못되면 새끼가 죽을 수 있는데, 이 경우 또한 오랜 스크러빙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가 강아지별로 떠났다.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고, 집안에서 막내이기 때문에 관련되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내 손에서 삐애앵 하고 울던 새끼의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모든 의료 분야가 그렇겠지만, 특히 데일리벳사라는 직업은 생과 사의 최전선에 있는 것 같다. 직전에 안락사를 하고 바로 분만 수술을 진행해야 할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지원 동기에도 서술했듯이 호주로 실습을 지원할 때에는 더 나은 처우, 산업동물 진료, 스페셜리스트에 대해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1인 병원에만 근무해보아 정확하게 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호주에서 데일리벳사로 일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동물 진료는 아쉽지만 잘 보지 못했다. 하우스콜이 대부분이라 농장으로 직접 가서 진료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병원에 소와 말이 있어 조금 더 오래 실습했다면 그 친구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는 것을 참관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스페셜리스트다. 직접 여쭤보았을 때, 일반적으로 5년 정도 전공 분야에 대한 인턴십과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야지만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다. 그동안 급여는 적고, 업무는 힘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도 포기를 한다고 한다.
큰 병원에서 여러 데일리벳사들(대부분 GP)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스페셜리스트는 특정 분야에 대한 진료만 하기 때문에 진료 범위가 좁고, 된 후에도 그것이 노력대비 결과가 뛰어나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한다. 더 심도있는 진료를 볼 수 있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내게는 GP가 더 적성에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농장을 운영하고 싶은데, 진료 범위가 좁다면 내 농장의 동물들을 제대로 치료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시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실습을 하는 동안 가장 행복했을 때는 새끼 강아지, 고양이의 첫 백신을 담당했을 때였다. 스페셜리스트가 된다면 정말 치료하기 힘든 동물들을 주로 보게 될 것인데, 잘못된 후의 스트레스가 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다양한 동물을 넓은 범위로 치료할 수 있는 GP가 더욱 더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이 동물병원의 장점은 케이스가 많다는 것이다. 호주의 다른 동물병원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질병이나 뱀물림 사고와 같은 응급상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적다고 한다.
데일리벳사의 수가 많고 모두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컴퓨터로 미리 어떤 진료가 있고, 어떤 데일리벳사가 담당하는 지를 보고 그 데일리벳사의 방에 가서 자유롭게 참관할 수 있다.
함께 일했던 모든 데일리벳사분들이 친절하시고, 질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시려고 하셔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수술 같은 경우에 응급상황이 아닐 경우 전부 예약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침에 수술실 앞 칠판에 어떤 수술이 있고, 어떤 데일리벳사가 담당할 지 적혀 있다. 관심이 가는 수술이 있으면 담당 데일리벳사분께 참관해도 되는지 여쭤보고 참관하면 된다. 실습기간동안 참관을 거부한 데일리벳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또 MRI, CT등 다양한 장비가 있어서 작은 동물병원에서 보기 힘든 케이스를 많이 참관할 수 있다.
단점은 나의 영어 실력 부족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호주 억양은 너무나 생소해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데일리벳사 분들께서 설명해주신 것을 전부 알아들을 수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씀드리면 천천히 쉬운 단어로 다시 설명해주셔서 좋았다.
그리고 병원이 정말 바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매일 퇴근 후에 봤던 케이스들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하다 잠들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진료 중이나 수술 중에 앉아있으라고 권유해주셔서 다행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 실습을 가는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막상 가보면 배울 점도 많고, 새로운 것이 많으니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외에서 실습할 것을 추천한다.
언어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 전문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를 아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강 다 알아들을 수 있다. 해외에서 데일리벳사로 일하는 것이 어떤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두려워하지말고 일단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가서 경험해보면 깨닫는 것이 많을 것이다.
또 다양한 동물 종을 진료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동물병원에서 실습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부분 내원하는 동물들이 강아지, 고양이인 것은 사실이지만, 종종 일반 동물병원에서는 보기 힘든 동물들도 내원하기 때문이다.
이 동물병원이 도시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곽에 위치하기 때문에, 주변에 라마 농장, 알파카 농장 등 다양한 농장들이 존재하기도 하고, 반려 양이나 사슴을 키우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다.
다만,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사람들은 실습을 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내게는 큰 단점이 아니었지만, 매일 안락사 케이스가 있기 때문에 동물을 떠나보내는 것이 힘든 사람이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도 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 모두가 친절하고 여유로워서 실습하는 동안 꼭 데일리벳학적 지식이 아니더라도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학교 생활이 버겁고 경쟁적인 사회가 힘에 부칠 때 좀 더 여유로운 나라에서 실습을 한다면 숨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긴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습했던 동물병원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를 전합니다.